유래 및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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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은 수십 년 간의 분동 및 행정동 변경, 분구와 타 구로의 편입 등의 과정을 거치며
동의 모습이 변모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며, 지역만의 독특한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 유래
일찍이 고려시대에 쓰인 운관비기(雲觀秘記)라는 책에 『이씨가 한양에 도읍 하리라(李氏爲王都漢陽)』는 비기설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고려 말기의 역대왕 및 중신들이 이 설에 신경이 쓰여 경계를 하던 중 한양 삼각산 아래 이곳에 오얏나무가 무성하다는 말을 듣고 이씨(李氏)가 흥할 징조라 여겨 오얏나무를 베는 벌리사(伐李使)를 보냈다. 이로부터 이 곳을 벌리(伐李)라고 칭하다가 번리(樊里)가 되었다고 한다.
비기(秘記)란 풍수지리, 음양도식에 관한 책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널리 유포되었으므로 그 영향은 지대하였다. 이 책에는 닥쳐올 미래의 세계를 암시하고 미지에 대한 예언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벌리사가 실제로 파견되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씨가 한양에 도읍 하리라는 비기설은 실제로 있었다.
번동의 현위치는 서쪽은 오패산 능선을 경계로 미아동과 연접되어 있고 북동쪽은 우이천을 끼고 도봉구 창동, 노원구 월계동과 나뉘어 있다.
또 이 동의 서북쪽은 수유동과 도봉로(미아삼거리∼우이교)를 경계로 접해 있는데 번동 남쪽은 성북구 장위동과 월계로(미아삼거리 ∼ 월계1·2교∼동1로 교차점)를 경계로 삼고 있다.
한편 번동과 미아동의 경계를 이루는 오패산은『빡빡산』,『벽오산(碧梧山)』,『매봉짜』등 여러 명칭으로 불린다.
먼저 빡빡산이란 명칭은 가운데 벌리에서 미아동으로 넘어가는 곳을 1960년대 말경 교원택지로 조성하느라고 나무를 모두 베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음에 아랫벌리 남쪽 일대 산은 비교적 수목이 울창하여 산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철종(哲宗)때부터 벽오산이라 불리어 왔다. 이산 이름은 이곳에 오현(梧峴)이란 고개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철종 왕비 철인왕후(哲仁王后)가 손자되는 김석진에게 『벽오산』이란 글씨를 하사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오현은 이 동에서 미아삼거리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서 『머귀고개』또는 줄여서 『며고개』라고 칭했는데, 이는 오동나무의 일종인 머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 연혁
- 1949.8.13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번리에서 서울 성북구로 편입
- 1949.8.14성북구 숭인출장소 설치하여 편입(대통령령 제160호)
- 1955.4.18서울시 성북구 번동으로 동리명 개칭(시조례 제66호)
- 1970.5.18서번동 분소 설치
- 1973.7. 1성북구로부터 분구되어 도봉구 신설 편입(대통령령 제6548호)
- 1977.9. 1번제2동으로 분동(시조례 제1181호)
- 1991.5. 1번제2동 분소 설치(1991.9.1 번제3동으로 분동)
- 1995.3. 1도봉구로부터 분구되어 강북구로 신설 편입(법률 제4802호)
- 자료 관리부서
- 번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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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778-4355
- 최종수정일
- 2024-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