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및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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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은 수십 년 간의 분동 및 행정동 변경, 분구와 타 구로의 편입 등의 과정을 거치며
동의 모습이 변모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며, 지역만의 독특한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 유래
수유동 동명의 유래는 두 가지로 전해져 온다.
하나는 북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이 마을을 넘쳤기 때문에 물『水』자와 넘칠『踰』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우리말로는 물이 넘친다(水踰) 하여 『무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옛날 수유리와 인접해 있는 삼양동이라는 곳에 삼형제가 살았는데 맏형은 바보이고, 둘째는 개구쟁이며, 셋째는 두 형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이들 삼형제는 힘을 합쳐 자기 땅을 확보하고자 싸움을 일삼고 다니므로 이 곳 주민들이 이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빨래골의 개울을 경계로 막았는데 그 개울물이 넘쳐흘러 수유리라 했다고 하나 주민들은 동명의 유래에 대해 전자(前者)의 전설을 이야기하는 이가 많다.
조선시대 수유동 자연부락의 명칭을 살펴보면 무너미·빨래골·가오리·화계사입구 또는 보등골·소군네 등 5개의 부락이 있었는데 이것이 합쳐 수유동이 되었다.
무너미는 수유(水踰)를 풀이한 것이며 웃무너미와 아랫무너미로 나뉘어져 있었다.
웃무너미는 현재 수유시장일대에 해당되며 아랫무너미(작은무너미)는 수유3동과 미아동의 일부인 수유오거리 일대가 해당된다.
빨래골은 물이 맑아 주민들의 빨래터로 이용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한양에 도성을 쌓고 성 밖 십리까지를 한성의 구역으로 정하였는데, 이곳은 지형이 다른 곳과 다르므로 여기서부터 5리를 더하여 우이동까지를 서울지역으로 삼았으므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소군네는 현재 우이동의 일부로 옛날 조선시대 시골에서 서울로 오는 소(牛)장사가 소를 몰고 이 내를 건너 시장을 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전하기도 하고, 소군네라는 하천에 나무다리가 놓였는데
이 다리로 서울과 경기도를 왕래하여 이 이름을 따서 소군네 라는 마을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화계사입구는 수유5동(현재 인수동)으로 보등굴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들 자연부락이 군데군데 10∼30여 호 정도가 한 부락을 이루던 이곳이 현재는 수유1동에서 인수동까지 주택가로 밀집되어 있으나, 당시는 벼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으로서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수원 (水源)이 좋아 벼농사가 다른 지방에 비해 비교적 잘되었으며, 비탈진 곳엔 보리, 조, 콩 등 일반 농작물을 재배하였다고 한다.
수유동은 북한산 등 송림의 맑은 공기와 기암괴석의 절경, 골짜기의 맑은 물이 좋아 1960년 이후부터 인구가 집중됨에 따라 농업은 점차 사라지고 현재와 같은 주택가와 상가가 형성되었다.
특히 수유1동 빨래골 일대는 1960년대부터 서울 도심의 철거민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부락을 형성하였는데, 본래 이곳은 옛날 궁중 무수리들이 다녀갈 정도로 빨래터와 쉼터로 유명한 곳이다.
동 연혁
- 1914.4경기도 고양군 인청면 일부지역(미아, 번, 수유, 우이동 지역)이 숭인면에 편입
- 1949.8.13대통령령 제159호에 의거 숭인면 일부 수유리와 우이리가 서울시 성북구에 편입
- 1995.3. 1수유1동의 일부가 수유5동으로 분동되어 현재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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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778-4702
- 최종수정일
- 2024-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