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 만남의광장에서 도선사 방향으로 가는 초입에 한옥 건물이 한 채 단아하게 서 있다. 천도교 건물인 봉황각이다. 봉황각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 의암(義菴) 손병희선생(1861~1922) 이 천도교 지도자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건립한 교육 시설이다. 손병희 선생은 이곳에서 1912년부터 3년 동안 수련회를 열고 전국의 천도교 지도자들을 7차례에 걸쳐 49일씩 교육하였다. 이곳에서는 종교 지도자 교육 뿐 아니라 독립정신 교육이 이루어졌고, 이때 교육을 받은 교역자 483명은 훗날 3·1만세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5명이 이곳에서 배출되었으니, 그 영향력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을 일이다.
봉황각은 총 7칸 규모의 목조 가옥에 기와로 지붕을 얹었으며, 건물 평면이 새 을(乙)자를 이루고 있다. 천도교의 핵심 사상인 우주 만물의 순환 작용과 활동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현판의 글씨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 1인인 한암 오세창 선생이 썼으며, '봉황각'이라는 이름은 천도교 교조인 최제우의 시에 자주 나오는 '봉황'이란 낱말을 따서 지은 것이다.
이곳 봉황각과 부속 건물에는 손병희 선생이 1912년부터 7년 동안 거주했으며, 그 당시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봉황각 앞쪽 약 50m 지점에는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봉황각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독립의 일꾼들을 키워 낸 중요한 산실의 역할을 한 곳으로, 지금은 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역사 탐방 장소가 되고 있다.